피자 광고의 마지막 자막이 ‘PLAY MUSINSA’입니다. 도미노피자가 만든 광고인데 끝에서 외치는 구호는 패션 플랫폼의 것입니다.
이 한 컷이 이 캠페인의 구조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도미노는 자기 화면을 내주는 대신 남의 브랜드를 빌려 왔습니다.
목차
1위가 처한 조건
- 시장은 줄었는데 이익은 늘었다
- 광고비를 절반으로 줄인 해
협업을 화면에 어떻게 담았을까요?
- ‘무진장’이라는 단어를 빌렸다
- ㅁㅅㅅ, 이름을 초성으로 줄이다
무드로 값을 설득하기
- 왜 1990년대 미국이었을까
- 새우와 스테이크를 따로 부른다
끝에서 계산이 드러납니다
- ‘PLAY MUSINSA’로 끝나는 피자 광고
오프라인 마케팅으로 설계한다면
옷을 사는 자리와 피자를 시키는 자리
시장은 줄었는데 이익은 늘었다

TVCF 광고 캡처 · 도심도 집도 아닙니다. 낮은 건물이 늘어선 미국식 거리에서 시작합니다.
국내 피자 시장은 5년 사이 2조 원 가까운 규모에서 1조 5,000억 원 수준까지 내려왔습니다. 밀가루와 치즈 값이 오르자 브랜드들이 가격을 올렸고, 그 자리를 저가 프랜차이즈와 냉동 피자가 채웠습니다. 경쟁사들은 점포가 줄고 적자로 돌아섰습니다.
줄어든 판, 늘어난 이익
국내 피자 시장 5년 전 2조 원 → 1조 5,000억 원 저가 프랜차이즈와 냉동 피자가 자리를 가져갔다. 경쟁사는 점포가 줄고 적자로 돌아섰다 | 도미노피자 매출·영업이익 모두 증가 판이 줄어드는 동안 1위는 자리를 지켰다. 다만 지킨 방식이 문제다 |
언론 보도 및 감사보고서 재구성 · 시장이 줄 때 1위가 쓰는 방법은 보통 둘입니다. 값을 내리거나, 새 손님을 데려오거나.
이 판에서 도미노피자는 자리를 지켰습니다. 국내 운영사인 청오디피케이의 2025년 연결 매출은 2,107억 원으로 한 해 전보다 늘었고, 영업이익은 70억 원에서 90억 원으로 올라섰습니다.
| 청오디피케이 (연결) | 2025 | 2024 |
| 매출액 | 2,107억 | 2,012억 |
| 영업이익 | 90억 | 70억 |
| 당기순이익 | 136억 | 87억 |
출처: 청오디피케이 2025년 연결감사보고서(DART). 청오디피케이는 국내 도미노피자 운영사이며, 광고 화면 끝에도 이 상호가 표기됩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평범한 방어전입니다. 그런데 이익이 어떻게 늘었는지를 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광고비를 절반으로 줄인 해
같은 감사보고서의 판매비와관리비 항목을 열어 보면 광고선전비가 나옵니다. 2024년 85억 원에서 2025년 42억 원으로 줄었습니다.
광고선전비 (청오디피케이 연결)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70억에서 90억으로 늘었습니다.
2025년 연결감사보고서(DART) · 광고를 절반으로 줄이고도 이익이 는 회사가 다음 여름에 무엇을 골랐는지가 이 광고입니다.
절반 아래로 내린 것입니다. 광고를 반으로 줄이고도 이익이 늘었다는 것은 마케팅 조직에게 좋기만 한 소식이 아닙니다. 그만큼 다음 해의 예산 근거가 약해지기 때문입니다. 줄여도 되더라는 결론이 한 번 서면 되돌리기 어렵죠.
이 조건에서 2026년 여름 신제품을 알려야 한다면 선택지가 좁아집니다. 매체비를 크게 쓰는 방법은 어렵고, 그렇다고 조용히 내놓으면 3만 원대 프리미엄 피자는 팔리지 않습니다. 시장이 줄어든 이유가 바로 가격이었으니까요.
도미노가 고른 답은 남의 브랜드를 빌리는 것이었습니다. 협업은 매체비를 쓰지 않고 도달을 확보하는 방법입니다. 상대의 채널과 고객과 무드가 함께 따라오고, 비용은 제품과 보상으로 치릅니다. 그 상대가 무신사였습니다.
‘무진장’이라는 단어를 빌렸다
협업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두 브랜드가 한 화면에서 싸우지 않게 만드는 것입니다. 로고를 나란히 놓으면 광고가 아니라 안내문이 되죠. 이 광고는 그 문제를 단어 하나로 풀었습니다.

TVCF 광고 캡처 · 카피가 여러 컷에 걸쳐 조금씩 완성됩니다. 이 컷에서는 파란색입니다.
화면에 뜨는 카피는 ‘무진장 시선을 사로잡다’입니다. 무진장은 무신사가 오래 써 온 대표 키워드이면서, 동시에 ‘엄청나게’를 뜻하는 우리말 부사입니다. 협업 상대의 이름을 부르는 동시에 제품을 자랑하는 문장이 됩니다. 한 단어가 두 가지 일을 합니다.

TVCF 광고 캡처 · 같은 문장이 분홍으로 넘어옵니다. 한 문장 안에서 브랜드가 교대합니다.
제품명 자체도 같은 원리로 지어졌습니다. 무진장 슈림프 스테이크 피자. 앞머리에 협업 브랜드의 단어가 붙고 뒤에 재료가 붙습니다. 이름을 부를 때마다 협업이 한 번씩 언급되는 구조죠.
카피가 화면에 나타나는 방식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같은 문장이 여러 컷에 걸쳐 조금씩 완성되는데, 컷이 바뀔 때마다 글자 색이 파랑에서 분홍으로 바뀝니다. 파랑은 도미노 로고의 색이죠. 한 문장 안에서 색이 넘어가면서 브랜드가 교대합니다.
ㅁㅅㅅ, 이름을 초성으로 줄이다
문제는 이름이 길다는 것입니다. 무진장 슈림프 스테이크 피자는 열두 글자입니다. 15초짜리 화면에서 이 이름을 또박또박 읽히게 만드는 것은 무리죠.

TVCF 광고 캡처 · 무진장 슈림프 스테이크의 첫 글자만 남겼습니다.
그래서 광고는 이름을 초성으로 줄입니다. 피자 클로즈업 위에 파랑과 초록으로 ‘ㅁ ㅅ ㅅ’ 석 자가 뜹니다. 무진장 슈림프 스테이크의 첫 글자만 남긴 것이죠. 다른 컷에서는 이것이 ‘무슈스 피자’라는 축약형으로 다시 나타납니다.

TVCF 광고 캡처 · 다른 컷에서는 축약형 ‘무슈스 피자’로 다시 나타납니다.
초성으로 줄여 부르는 것은 젠지가 메시지를 주고받을 때 쓰는 방식입니다. 브랜드가 자기 제품 이름을 소비자가 줄여 부를 법한 형태로 먼저 줄여서 내놓은 셈입니다. 정식 명칭을 외우게 하는 대신 리듬을 남기는 쪽을 골랐습니다.
이 선택에는 대가도 따릅니다. 초성은 아는 사람에게는 빠르지만 모르는 사람에게는 암호입니다. 검색창에 ‘ㅁㅅㅅ’을 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한 이유는 이 캠페인이 검색으로 오는 손님을 기다리는 종류가 아니기 때문으로 읽힙니다. 무신사 앱과 도미노 앱 안에서 이미 만나기로 되어 있는 손님을 향한 화면입니다.
왜 1990년대 미국이었을까
배경도 그냥 고른 것이 아닙니다. 광고는 도심이나 집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낮은 건물이 늘어선 미국식 거리와 주유소, 파란 플라스틱 의자가 붙어 있는 매장 앞이 나옵니다. 인물이 입은 옷은 파란 트레이닝 재킷이고, 소품으로 놓인 트렁크에는 옛 항공사 스티커가 붙어 있습니다.

TVCF 광고 캡처 · 소품에 붙은 옛 항공사 스티커까지 1990년대를 가리킵니다.
무신사가 이번에 내놓은 한정판 컬렉션의 콘셉트가 도미노피자의 글로벌 헤리티지를 1990년대 아메리칸 빈티지로 재해석한 것입니다. 티셔츠와 양말, 피자 조각 모양으로 접히는 쇼퍼백, 치즈색 우산까지 일곱 가지가 그 무드로 만들어졌습니다.
광고의 배경은 그 옷들이 어울리는 장소입니다. 즉 이 화면은 피자를 파는 장면이면서 동시에 옷의 룩북 역할을 겸합니다. 한 편의 영상으로 두 브랜드가 각자 팔 것을 보여주는 구조인데, 무드를 공유했기 때문에 화면이 두 쪽으로 갈라지지 않습니다.
도미노에게 1990년대 미국은 빌려온 무드가 아니라 원래 자기 것이라는 점도 이 선택을 자연스럽게 만듭니다. 오래된 브랜드가 가진 자산 가운데 가장 팔기 좋은 것이 헤리티지죠.
새우와 스테이크를 따로 부른다
협업과 무드만으로는 3만 원을 설득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광고는 재료를 따로 떼어 보여주는 데 상당한 시간을 씁니다.

TVCF 광고 캡처 · 재료 이름을 상표처럼 다룹니다. 새우 컷에는 Shrimp가 붙습니다.
새우가 나오는 컷에는 ‘Shrimp’, 고기가 나오는 컷에는 ‘Steak’라는 필기체 자막이 따로 붙습니다. 제품명 안에 이미 들어 있는 단어를 굳이 영어 필기체로 한 번 더 쓰는 것이죠. 재료 이름을 상표처럼 다루는 방식이죠.

TVCF 광고 캡처 · 표정보다 상자 안쪽이 화면의 중심입니다.
피자 박스를 여는 장면이 정면에서 잡히고, 그 너머로 인물의 눈이 보입니다. 먹는 사람의 표정보다 상자 안쪽이 화면의 중심입니다. 치즈가 늘어나는 컷은 느린 속도로 처리되죠.
| 무진장 슈림프 스테이크 피자 | 가격 |
| L 사이즈 | 36,900원 |
| M 사이즈 | 30,000원 |
2026년 7월 16일 출시. 도미노피자의 프리미엄 라인에 속합니다.
가격을 생각하면 이 배분은 계산이 섭니다. L 사이즈 36,900원은 배달 앱에서 즉흥적으로 누르는 금액이 아닙니다. 협업이 관심을 끌어오는 역할을 한다면, 지갑을 여는 마지막 한 걸음은 결국 재료가 밀어야 합니다.
‘PLAY MUSINSA’로 끝나는 피자 광고
마지막 컷에서 다섯 명이 피자 조각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립니다. 그 아래 자막이 두 줄로 박힙니다. PLAY FREE, PLAY MUSINSA.

TVCF 광고 캡처 · 도미노가 만든 광고의 마지막 구호가 무신사의 것입니다.
도미노피자의 신제품 광고가 상대 브랜드의 구호로 끝납니다. 광고주 입장에서 쉬운 결정은 아닙니다. 30초를 다 쓰고 마지막 인상을 남에게 넘기는 일이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이렇게 한 이유는 이 캠페인에서 도미노가 사려는 것이 판매만이 아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피자 시장이 줄어든 자리에는 피자가 촌스러운 선택지가 되었다는 인식도 함께 있습니다. 그 인식은 할인으로 바뀌지 않습니다.
두 브랜드가 각각 내놓은 것
도미노피자가 댄 것 제품 무진장 슈림프 스테이크 피자 모델 전속모델 걸그룹 리센느 보상 선착순 10만 명 상품권 | 무신사가 댄 것 단어 ‘무진장’이라는 대표 키워드 무드 1990년대 아메리칸 빈티지 물건 한정판 컬렉션 7종 |
상품권은 무신사머니로 교환되며 최대 100만 원이 무작위로 지급됩니다. 무신사 오프라인 스토어 10% 할인 쿠폰도 함께 제공됩니다.
공개 자료 재구성 · 도미노는 물건을 대고, 무신사는 무형의 것을 댔습니다.
보상 설계를 보면 방향이 더 분명해집니다. 앱에서 이 피자를 주문한 회원 선착순 10만 명에게 무신사에서 쓸 수 있는 상품권을 줍니다. 최대 100만 원이 무작위로 나오고, 오프라인 스토어 할인 쿠폰이 따라붙습니다. 피자를 시키면 옷을 사러 가게 되는 구조입니다.
도미노가 내놓은 것은 제품과 모델과 보상이고, 무신사가 내놓은 것은 단어와 무드와 물건입니다. 한쪽은 유형이고 다른 쪽은 무형인데, 광고비를 절반으로 줄인 회사에게는 이 교환이 유리합니다. 돈 대신 재고와 쿠폰으로 도달을 사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 방식이 반복되면 브랜드 쪽에 남는 것이 줄어듭니다. 협업은 매번 새 상대를 찾아야 하고, 상대가 바뀌면 무드도 바뀝니다. 이번 캠페인으로 도미노를 다시 본 사람이 기억하는 것이 도미노인지 무신사인지는 조금 지나 봐야 알 수 있습니다.
옷을 사는 자리와 피자를 시키는 자리
이 캠페인을 화면 밖에서 이어 간다면 어디에서 만나야 할까요? 협업 캠페인은 목적지가 하나가 아니라는 점부터 짚어야 합니다.
이 캠페인에는 목적지가 두 개다
피자를 시키는 순간 저녁 · 주말 · 집 안 3만 원대 결정이 일어나는 자리. 배가 고파야 열리는 창 | 옷을 보러 가는 순간 주말 도심 · 쇼핑 동선 상품권과 컬렉션이 살아 있는 자리. 협업이 실물로 존재하는 곳 |
브랜드 조건에서 도출한 추론 · 협업 캠페인은 한 브랜드의 손님만 보고 매체를 고르면 절반을 버리게 됩니다.
피자를 시키는 순간은 저녁이고 대체로 집 안입니다. 배가 고픈 상태에서 결정이 일어나기 때문에, 그 시간대에 생활권 안쪽에서 마주치는 매체가 유리합니다. 매일 오르내리는 동선에 붙은 화면은 신제품 이름을 반복해서 흘려 넣기에 적합합니다. 이름이 긴 제품일수록 반복이 필요하죠.
다른 한쪽은 성격이 다릅니다. 상품권과 한정판 컬렉션은 옷을 보러 나온 사람에게 의미가 생깁니다. 주말 도심의 쇼핑 동선은 이 캠페인의 절반이 실물로 존재하는 자리입니다. 여기서는 피자를 파는 것이 아니라 협업이 진짜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쪽이 맞습니다.
소재를 옮길 때 무엇을 가져갈지는 이 광고에 답이 나와 있습니다. 옮겨지는 것은 ‘무진장’ 석 자와 파랑에서 분홍으로 넘어가는 색입니다. 두 브랜드가 한 화면에 있다는 사실을 로고 없이도 전달하는 장치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초성 ‘ㅁㅅㅅ’은 이미 아는 사람에게만 열립니다. 지나가며 처음 보는 자리에서는 암호로 남습니다.
협업의 수명이 짧다는 점도 매체 설계에 영향을 줍니다. 한정판은 팔리면 끝나고 상품권도 10만 장에서 멈춥니다. 길게 쌓는 자산이 아니라 정해진 기간 안에 최대한 많이 만나야 하는 캠페인이라면, 오래 남기는 것보다 짧고 굵게 겹치는 배치가 어울립니다.
광고선전비를 절반으로 줄이고도 이익을 늘린 회사가 다음 여름에 고른 방법은 남의 브랜드를 빌리는 것이었습니다. 상대의 대표 단어를 부사로 쓰고, 상대의 무드로 배경을 깔고, 마지막 구호까지 넘겼습니다.
협업은 매체비를 쓰지 않고 도달을 사는 방법이지만, 빌린 무드는 돌려줘야 합니다. 이번 여름이 지나고 도미노에 무엇이 남는지가 이 캠페인의 진짜 성적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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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TVCF - 광고 원본, 장면 구성·자막·문구 및 광고주 표기
- 청오디피케이 2025년 연결감사보고서(DART) - 매출액·영업이익·당기순이익 및 광고선전비
- 무진장 슈림프 스테이크 피자 출시(2026년 7월 16일)·가격·상품권 프로모션·무신사 한정판 컬렉션 7종 - 언론 보도 및 브랜드 공지
- 국내 피자 시장 규모 축소와 경쟁사 실적 - 언론 보도
재무 수치는 연결 기준이며 원 단위를 반올림했습니다. 시장 규모는 보도된 추정치입니다. 기획 의도에 관한 서술은 공개된 자료와 광고 원본에서 도출한 해석이며, 브랜드가 밝힌 공식 설명이 아닙니다.
옷을 사는 자리와 피자를 시키는 자리
시장은 줄었는데 이익은 늘었다
TVCF 광고 캡처 · 도심도 집도 아닙니다. 낮은 건물이 늘어선 미국식 거리에서 시작합니다.
국내 피자 시장은 5년 사이 2조 원 가까운 규모에서 1조 5,000억 원 수준까지 내려왔습니다. 밀가루와 치즈 값이 오르자 브랜드들이 가격을 올렸고, 그 자리를 저가 프랜차이즈와 냉동 피자가 채웠습니다. 경쟁사들은 점포가 줄고 적자로 돌아섰습니다.
언론 보도 및 감사보고서 재구성 · 시장이 줄 때 1위가 쓰는 방법은 보통 둘입니다. 값을 내리거나, 새 손님을 데려오거나.
이 판에서 도미노피자는 자리를 지켰습니다. 국내 운영사인 청오디피케이의 2025년 연결 매출은 2,107억 원으로 한 해 전보다 늘었고, 영업이익은 70억 원에서 90억 원으로 올라섰습니다.
출처: 청오디피케이 2025년 연결감사보고서(DART). 청오디피케이는 국내 도미노피자 운영사이며, 광고 화면 끝에도 이 상호가 표기됩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평범한 방어전입니다. 그런데 이익이 어떻게 늘었는지를 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광고비를 절반으로 줄인 해
같은 감사보고서의 판매비와관리비 항목을 열어 보면 광고선전비가 나옵니다. 2024년 85억 원에서 2025년 42억 원으로 줄었습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70억에서 90억으로 늘었습니다.
2025년 연결감사보고서(DART) · 광고를 절반으로 줄이고도 이익이 는 회사가 다음 여름에 무엇을 골랐는지가 이 광고입니다.
절반 아래로 내린 것입니다. 광고를 반으로 줄이고도 이익이 늘었다는 것은 마케팅 조직에게 좋기만 한 소식이 아닙니다. 그만큼 다음 해의 예산 근거가 약해지기 때문입니다. 줄여도 되더라는 결론이 한 번 서면 되돌리기 어렵죠.
이 조건에서 2026년 여름 신제품을 알려야 한다면 선택지가 좁아집니다. 매체비를 크게 쓰는 방법은 어렵고, 그렇다고 조용히 내놓으면 3만 원대 프리미엄 피자는 팔리지 않습니다. 시장이 줄어든 이유가 바로 가격이었으니까요.
도미노가 고른 답은 남의 브랜드를 빌리는 것이었습니다. 협업은 매체비를 쓰지 않고 도달을 확보하는 방법입니다. 상대의 채널과 고객과 무드가 함께 따라오고, 비용은 제품과 보상으로 치릅니다. 그 상대가 무신사였습니다.
‘무진장’이라는 단어를 빌렸다
협업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두 브랜드가 한 화면에서 싸우지 않게 만드는 것입니다. 로고를 나란히 놓으면 광고가 아니라 안내문이 되죠. 이 광고는 그 문제를 단어 하나로 풀었습니다.
TVCF 광고 캡처 · 카피가 여러 컷에 걸쳐 조금씩 완성됩니다. 이 컷에서는 파란색입니다.
화면에 뜨는 카피는 ‘무진장 시선을 사로잡다’입니다. 무진장은 무신사가 오래 써 온 대표 키워드이면서, 동시에 ‘엄청나게’를 뜻하는 우리말 부사입니다. 협업 상대의 이름을 부르는 동시에 제품을 자랑하는 문장이 됩니다. 한 단어가 두 가지 일을 합니다.
TVCF 광고 캡처 · 같은 문장이 분홍으로 넘어옵니다. 한 문장 안에서 브랜드가 교대합니다.
제품명 자체도 같은 원리로 지어졌습니다. 무진장 슈림프 스테이크 피자. 앞머리에 협업 브랜드의 단어가 붙고 뒤에 재료가 붙습니다. 이름을 부를 때마다 협업이 한 번씩 언급되는 구조죠.
카피가 화면에 나타나는 방식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같은 문장이 여러 컷에 걸쳐 조금씩 완성되는데, 컷이 바뀔 때마다 글자 색이 파랑에서 분홍으로 바뀝니다. 파랑은 도미노 로고의 색이죠. 한 문장 안에서 색이 넘어가면서 브랜드가 교대합니다.
ㅁㅅㅅ, 이름을 초성으로 줄이다
문제는 이름이 길다는 것입니다. 무진장 슈림프 스테이크 피자는 열두 글자입니다. 15초짜리 화면에서 이 이름을 또박또박 읽히게 만드는 것은 무리죠.
TVCF 광고 캡처 · 무진장 슈림프 스테이크의 첫 글자만 남겼습니다.
그래서 광고는 이름을 초성으로 줄입니다. 피자 클로즈업 위에 파랑과 초록으로 ‘ㅁ ㅅ ㅅ’ 석 자가 뜹니다. 무진장 슈림프 스테이크의 첫 글자만 남긴 것이죠. 다른 컷에서는 이것이 ‘무슈스 피자’라는 축약형으로 다시 나타납니다.
TVCF 광고 캡처 · 다른 컷에서는 축약형 ‘무슈스 피자’로 다시 나타납니다.
초성으로 줄여 부르는 것은 젠지가 메시지를 주고받을 때 쓰는 방식입니다. 브랜드가 자기 제품 이름을 소비자가 줄여 부를 법한 형태로 먼저 줄여서 내놓은 셈입니다. 정식 명칭을 외우게 하는 대신 리듬을 남기는 쪽을 골랐습니다.
이 선택에는 대가도 따릅니다. 초성은 아는 사람에게는 빠르지만 모르는 사람에게는 암호입니다. 검색창에 ‘ㅁㅅㅅ’을 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한 이유는 이 캠페인이 검색으로 오는 손님을 기다리는 종류가 아니기 때문으로 읽힙니다. 무신사 앱과 도미노 앱 안에서 이미 만나기로 되어 있는 손님을 향한 화면입니다.
왜 1990년대 미국이었을까
배경도 그냥 고른 것이 아닙니다. 광고는 도심이나 집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낮은 건물이 늘어선 미국식 거리와 주유소, 파란 플라스틱 의자가 붙어 있는 매장 앞이 나옵니다. 인물이 입은 옷은 파란 트레이닝 재킷이고, 소품으로 놓인 트렁크에는 옛 항공사 스티커가 붙어 있습니다.
TVCF 광고 캡처 · 소품에 붙은 옛 항공사 스티커까지 1990년대를 가리킵니다.
무신사가 이번에 내놓은 한정판 컬렉션의 콘셉트가 도미노피자의 글로벌 헤리티지를 1990년대 아메리칸 빈티지로 재해석한 것입니다. 티셔츠와 양말, 피자 조각 모양으로 접히는 쇼퍼백, 치즈색 우산까지 일곱 가지가 그 무드로 만들어졌습니다.
광고의 배경은 그 옷들이 어울리는 장소입니다. 즉 이 화면은 피자를 파는 장면이면서 동시에 옷의 룩북 역할을 겸합니다. 한 편의 영상으로 두 브랜드가 각자 팔 것을 보여주는 구조인데, 무드를 공유했기 때문에 화면이 두 쪽으로 갈라지지 않습니다.
도미노에게 1990년대 미국은 빌려온 무드가 아니라 원래 자기 것이라는 점도 이 선택을 자연스럽게 만듭니다. 오래된 브랜드가 가진 자산 가운데 가장 팔기 좋은 것이 헤리티지죠.
새우와 스테이크를 따로 부른다
협업과 무드만으로는 3만 원을 설득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광고는 재료를 따로 떼어 보여주는 데 상당한 시간을 씁니다.
TVCF 광고 캡처 · 재료 이름을 상표처럼 다룹니다. 새우 컷에는 Shrimp가 붙습니다.
새우가 나오는 컷에는 ‘Shrimp’, 고기가 나오는 컷에는 ‘Steak’라는 필기체 자막이 따로 붙습니다. 제품명 안에 이미 들어 있는 단어를 굳이 영어 필기체로 한 번 더 쓰는 것이죠. 재료 이름을 상표처럼 다루는 방식이죠.
TVCF 광고 캡처 · 표정보다 상자 안쪽이 화면의 중심입니다.
피자 박스를 여는 장면이 정면에서 잡히고, 그 너머로 인물의 눈이 보입니다. 먹는 사람의 표정보다 상자 안쪽이 화면의 중심입니다. 치즈가 늘어나는 컷은 느린 속도로 처리되죠.
2026년 7월 16일 출시. 도미노피자의 프리미엄 라인에 속합니다.
가격을 생각하면 이 배분은 계산이 섭니다. L 사이즈 36,900원은 배달 앱에서 즉흥적으로 누르는 금액이 아닙니다. 협업이 관심을 끌어오는 역할을 한다면, 지갑을 여는 마지막 한 걸음은 결국 재료가 밀어야 합니다.
‘PLAY MUSINSA’로 끝나는 피자 광고
마지막 컷에서 다섯 명이 피자 조각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립니다. 그 아래 자막이 두 줄로 박힙니다. PLAY FREE, PLAY MUSINSA.
TVCF 광고 캡처 · 도미노가 만든 광고의 마지막 구호가 무신사의 것입니다.
도미노피자의 신제품 광고가 상대 브랜드의 구호로 끝납니다. 광고주 입장에서 쉬운 결정은 아닙니다. 30초를 다 쓰고 마지막 인상을 남에게 넘기는 일이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이렇게 한 이유는 이 캠페인에서 도미노가 사려는 것이 판매만이 아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피자 시장이 줄어든 자리에는 피자가 촌스러운 선택지가 되었다는 인식도 함께 있습니다. 그 인식은 할인으로 바뀌지 않습니다.
상품권은 무신사머니로 교환되며 최대 100만 원이 무작위로 지급됩니다. 무신사 오프라인 스토어 10% 할인 쿠폰도 함께 제공됩니다.
공개 자료 재구성 · 도미노는 물건을 대고, 무신사는 무형의 것을 댔습니다.
보상 설계를 보면 방향이 더 분명해집니다. 앱에서 이 피자를 주문한 회원 선착순 10만 명에게 무신사에서 쓸 수 있는 상품권을 줍니다. 최대 100만 원이 무작위로 나오고, 오프라인 스토어 할인 쿠폰이 따라붙습니다. 피자를 시키면 옷을 사러 가게 되는 구조입니다.
도미노가 내놓은 것은 제품과 모델과 보상이고, 무신사가 내놓은 것은 단어와 무드와 물건입니다. 한쪽은 유형이고 다른 쪽은 무형인데, 광고비를 절반으로 줄인 회사에게는 이 교환이 유리합니다. 돈 대신 재고와 쿠폰으로 도달을 사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 방식이 반복되면 브랜드 쪽에 남는 것이 줄어듭니다. 협업은 매번 새 상대를 찾아야 하고, 상대가 바뀌면 무드도 바뀝니다. 이번 캠페인으로 도미노를 다시 본 사람이 기억하는 것이 도미노인지 무신사인지는 조금 지나 봐야 알 수 있습니다.
옷을 사는 자리와 피자를 시키는 자리
이 캠페인을 화면 밖에서 이어 간다면 어디에서 만나야 할까요? 협업 캠페인은 목적지가 하나가 아니라는 점부터 짚어야 합니다.
브랜드 조건에서 도출한 추론 · 협업 캠페인은 한 브랜드의 손님만 보고 매체를 고르면 절반을 버리게 됩니다.
피자를 시키는 순간은 저녁이고 대체로 집 안입니다. 배가 고픈 상태에서 결정이 일어나기 때문에, 그 시간대에 생활권 안쪽에서 마주치는 매체가 유리합니다. 매일 오르내리는 동선에 붙은 화면은 신제품 이름을 반복해서 흘려 넣기에 적합합니다. 이름이 긴 제품일수록 반복이 필요하죠.
다른 한쪽은 성격이 다릅니다. 상품권과 한정판 컬렉션은 옷을 보러 나온 사람에게 의미가 생깁니다. 주말 도심의 쇼핑 동선은 이 캠페인의 절반이 실물로 존재하는 자리입니다. 여기서는 피자를 파는 것이 아니라 협업이 진짜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쪽이 맞습니다.
소재를 옮길 때 무엇을 가져갈지는 이 광고에 답이 나와 있습니다. 옮겨지는 것은 ‘무진장’ 석 자와 파랑에서 분홍으로 넘어가는 색입니다. 두 브랜드가 한 화면에 있다는 사실을 로고 없이도 전달하는 장치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초성 ‘ㅁㅅㅅ’은 이미 아는 사람에게만 열립니다. 지나가며 처음 보는 자리에서는 암호로 남습니다.
협업의 수명이 짧다는 점도 매체 설계에 영향을 줍니다. 한정판은 팔리면 끝나고 상품권도 10만 장에서 멈춥니다. 길게 쌓는 자산이 아니라 정해진 기간 안에 최대한 많이 만나야 하는 캠페인이라면, 오래 남기는 것보다 짧고 굵게 겹치는 배치가 어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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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무 수치는 연결 기준이며 원 단위를 반올림했습니다. 시장 규모는 보도된 추정치입니다. 기획 의도에 관한 서술은 공개된 자료와 광고 원본에서 도출한 해석이며, 브랜드가 밝힌 공식 설명이 아닙니다.